♣ 음 악 감 상 실 ♣/▶ 음 악 · 팝 송◀

Let Me Be There - Olivia Newton John

마도로스캡틴 2010. 12. 16. 20:34











Let Me Be There-올리비아 뉴튼존

Wherever you go
당신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Wherever you may wonder in your life
당신의 삶동안 헤매일 곳이라면 어디든지

Well surely you know, I always wanna be there
글쎄요, 당신은 분명히 알겠죠, 난 언제나 그곳에 있고 싶어요.

Holding your hand
당신의 손을 잡고

And standing by to catch you when you fall
당신이 넘어질 때면 잡아줄 수 있는 곳에 서서

Seeing you through, in everything you do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을 끝까지 지켜 보면서.

I said let me be there in your morning
당신의 아침을 함께 할 곳에 있게 해달라고 말했었죠.

Let me be there in your night
당신의 밤을 함께 할 곳에 있게 해주세요.

Let me change whatever's wrong and make it right
잘못된 거라면 뭐든지 고치고, 바르게 만들게 해주세요.

Let me take you to that wonderland that only two can share
오직 우리 둘 만이 함께 할 그 놀라운 곳에 당신을 데려가게 해주세요.

All I ask you, is let me be there
내가 당신에게 원하는 모든 것, 그곳에 있게 해달라는 것.

Watching you grow
당신이 자라는 걸 지켜보고,

And going through the changes in your life
당신의 삶에 있을 변화를 경험하고,

That's how I know, I always wanna to be there
그것이 내가 아는 방법, 나는 언제나 그곳에 있고 싶어요.

Whenever you feel you need a friend to lean on
당신이 기댈 친구가 필요하다 느낄 때면 언제나

Here I am
내가 여기 있어요.

Whenever you call, you know I'll be there
당신이 부를 때면 언제나, 알잖아요, 내가 거기 있을 거에요











Olivia Newton John,

Olivia Newton John 는 엘리트 집안에서 1948년 뉴욕의 캠브릿지 태생인 그녀는 할아버지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과학자(막스 본)이며, 부모는 모두 대학교수인 엘리트 가문에서 자라났다.

호주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서 어린시절을 호주에서 보냈기때문에 처음에는 호주출신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녀는 분명 미국태생이다.

1965년, 부모가 이혼하는 아픔속에서 그녀는 호주방송의 "탤런트 콘테스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연예계에 첫 데뷔를 하게되었다.

  

가수로의 성공
어릴때부터 만능 엔터테이너 기질을 보였던 그녀는 스쿨 밴드 'The Sol Four"를 결성해 커피 하우스에서 노래를 부르며 20대를 보냈는데 1965년 솔로로 전향한 그녀가 본격적으로 음악계로 발을 디디고 출발한 시발점은 1970년 MCA레코드와 계약하면서 부터이다.

1971년 "밥 딜런"의 곡 "If now for you"로 팝계의 신고식을 치르면서 싱글차트 25위로 성공적인 출발을 했다.

1973년 발표한 "Let Me Be There"은 그녀에게 제 16회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컨트리 여자 보컬리스트" 노미네이트라는 영광을 안겨주었는데, 1974년 "I HONESTLY LOVE YOU(2주)"가 크게 히트하면서 결국 그래미 4개부문 후보에 오르며 "최우수 여성 팝 보컬리스트" 부문과 "올해의 레코드" 부문을 수상했다.

컨츄리뮤직에서 어덜트 컨템포리 계열의 발라드 가수로 성공적인 변신
1975년 "Have You Never Been Mellow(1주)"를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올리며 팝뮤직계의 요정으로 군림한 그녀의 성공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1978년 음악적 변신을 시도하면서 전세계적인 스타로 거듭나게 된다.

1978년 뮤지컬을 영화화한 [그리스]에서 주인공 "샌디" 역(남자 주인공 "존 트라볼타")을 맡는 시점부터 어덜트 컨템포리 성향의 발라드에서 비트가 강한 팝뮤직쪽으로 전환하면서 본격적인 팝가수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 영화에서 "존트라볼타"와 같이 부른 "YOU'RE THE onE THAT I WANT"은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1주간 1위를 차지했다.)

1981년 11월에 그녀는 자신의 최대 히트곡인 "Physical"을 10주간 1위자리에 올려 놓으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고,

전세계 남성팬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그후 많은 히트곡을 발표 하긴 했지만, 팝계에서는 대중적인 측면으로볼때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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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서의 올리비아 뉴튼 존

이후 그녀의 인생은 여러모로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는데, 영화 [재너두]에서 같이 출연했던 11살 연하의 무명 댄서 [매트 래턴지]와 사랑에 빠지고 1984년에 결혼을 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현재 삶중에서 가장 중요한 버팀목이자 보물인 딸 [클로에]를 1986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큰 시련을 맞게 되었는데, 아버지가 암으로 사망하고 자신도 유방암에 걸리고(1992년), 화려한 연예계 생활의 중단, 남편과의 이혼(1995년)등 많은 악재들이 줄줄이 따라 왔다.

여자로서는 최악이라는, 한쪽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속에서 투병생활을 하고 다시 태어난 그녀는 이제 화려한 스타의 자리가 아닌 아동보호 운동가, 환경 보호론자(1990년 UN환경 친선 대사로 활동)라는 또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물론 음악활동도 재개를 하면서 1998년부터 음반을 발표하고 있는데, 초창기의 그녀 음악에 분위기와 깊이를 더한 스타일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하고싶은 음악을 다시하는 행복속에 살아 가고 있다.

2000년에 국내 공연으로(한국계인 남자친구와 동행해서 큰 화제) 그녀를 아끼던 팬들에게 또다른 감회를 선사했었는데, 그전에 비지스 30주년 특별공연에 초대되어 제일 앞자리에서 무수히 카메라에 잡힐때의 모습보다 더 밝은 얼굴을 접할수 있었습니다. ("비지스"형제의 막내인 "엔디 깁(사망)"과 깊은 관계였던 그녀에게 "비지스"는 특별한 존재였다.)

2000년 "짐브릭 만"의 공연에서 그녀는 게스트로 초정이되어 "짐브릭 만"의 가장 사랑받는 곡인 "Valentine"을 "짐브릭 만"의 반주로 불렀는데, 아쉬운 점은 그 공연 실황때 부른 3곡중에서 앨범에는 두곡만이 앨범에 담겨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공연실황 DVD에서는 그녀가 중년의 모습으로 부른 모든 장면을 만날수 있다.

   onj 이제는 나이가 들어버린 올리비아 뉴튼 존
 "힘든 나의 삶속에 가장 큰 희망은 나의 딸이다"라는 말을 종종 하는 그녀는 이제 화려한 젊은 스타는 아니지만,


30대 이상의 팝팬들에게는 그리운 추억의 대상으로 영원히 팝계의 요정으로 남아 있을것이다.

80 01 78 49  toomorrow